나의 가치 높이기

악몽같았던 캐나다에서의 첫 직장

드니부부 2023. 10. 2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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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은 지도 벌써 3년 차가 되었다. 



 
2021년 컬리지 졸업 후 바로 로컬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잠깐 쉬는 기간이 있었으니 대략 2년 정도 일을 한 셈.
그동안 주이동 2회 + 커리어 빌드업하느라 이직이 잦았고, 지금 회사가 네 번째 회사다.
 
 
졸업 후 취업이 된 작은 로컬 회사는 백인(캐네디언)이 99%이고 그중 90%가 남자로 구성된 회사다.
아시안은 내가 유일했고, 인도에서 온 유학생 출신이 한 명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도대체 왜 뽑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겉모습과 행동 모두.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았다. 몇 달 후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그 그룹에서부터 고립시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몇 가지 계기들이 있었는데,
 
 
첫째로는 캐네디언들은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에 오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느라 30분은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정말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한다. 어떨 땐 뭐 저런 것까지 얘기하나 진짜 TMI라고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은 나도 이런 문화에 많이 적응하긴 했지만,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옆집 개가 짖어서 시끄러웠다는 것까지 이야기한다. 나도 그런 대화들을 많이 하려고 처음에는 미리 생각도 해보고,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아이도 없고 애완동물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내게 힘이 되었던 사람은 같은 이민자로서 얘기가 통했던 인도 출신 테크니션, 그리고 나보다 늦게 입사한 아프리카 출신 친구였다. 그들과의 점심시간은 고립된 회사생활의 빛이었다.
 
 
두번째로는 투머치 소셜. 이 회사는 매주 금요일 4시만 되면 모두 보드룸에 모여 맥주파티를 한다. 다함께 맥주를 마시며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을 한 시간동안 해야하는데, 필참은 아니지만 신입인 나는 딱히 핑계거리가 없어 항상 참석해야만 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나는 거기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대화에 끼어들기엔 티키타카가 너무 빨랐고, 사람들과 공유할 얘기나 생각이 딱히 없었다. 주제들이 대부분 나의 생활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나에게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하는 수준이었고, 옆에 앉은 사람과 1대1 대화를 하거나, 리액션만 하면서 앉아있었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빨리 집에 가고싶은 마음 뿐이었고, 매주 금요일 4시가 다가오는 것이 제일 두려웠다.
 
 
어느 날은 회사 내 여자들끼리의 단톡방에서, 퇴사하는 사람이 있으니 퇴사 기념?겸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나가서 놀 명분이 필요하니 여성협회에 옷이나 신발을 기부하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몇 가지 기부할 옷들을 챙겨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하고, 다른 여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꽤나 기대를 했었다. 
함께 차를 타고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을 했고, 한 명이 너네 선크림 바를래? 라고 물었다. 나도 바르려고 선크림을 받아들었을 때, 내 직속상사인 애가 "너 같은 피부도 선크림 바르니?"라고 얘기했고, 그러면서 옆에 있던 다른 애랑 둘이 깔깔대며 웃는게 아닌가. 그 당시엔 아무렇지 않게 어 나도 바르는데? 하고 넘어갔지만 이걸 곱씹어보니 너무 기분이 나빴고, 그 상황에서 바로 그걸 인지하고 참교육을 못해준게 여전히 아쉽다.
  
 
세번째는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따르던 상사가 있었는데, 코비드에 걸려 회사에 나오지 않는 날이 길어지고 있던 어느 날, 사장이 갑자기 모든 직원을 보드룸으로 불렀고, 흐느끼며 그 상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온라인 회의에서 괜찮다며 농담을 던졌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그 소식에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사망소식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 소식을 듣고 충격과 슬픔에 빠졌던 사람들이 소식을 들은 지 20분이 지나지 않아 그 상사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 그랬던 사람이었어, ~~~ 그랬었는데, 라며 하하하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상식으로는 누가 사망하면 적어도 장례식 3일동안은 슬퍼하며 고인이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는 것이 예의인데, 단 몇 분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보드룸을 떠났던 3명 정도의 사람들만 내겐 정상적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날 정신적으로 너무나 괴롭혔던 내 직속상사. 
입사 초반에는 정말 내게 잘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이 너~~~무 빨라서 걔가 말만 하면 $%^^%$$#@@@  이렇게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 지 내가 이해를 못하던 경우가 정말 많았고, 점점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끊겼다. 그렇게 걔는 날 대놓고 무시하고,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건 더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마음고생이 심했던 나는 스트레스성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꾸역꾸역 버티다가 그곳을 관두고 나니, 내 첫 커리어를 쌓게 해준 고마운 회사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갉아먹고 내 가치를 무시당하면서까지 다녀야 하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여러모로 깨달은 것도, 배운 것도 많은 첫 캐네디언 회사였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 사람이 참 중요하다는 것. 최근에 회사 링크드인에 들어가보니, 그 직속상사는 짤리고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것 같다. 
 
지금은 내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새삼 감사해진다. 


퇴사 후 떠났던 밴쿠버, 빅토리아 여행. 재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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